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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 실습, 학생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메디칼타임즈=박수연 학생(연세원주의대) 대부분의 의과대학생이 의학과 3학년 때 임하게 되는 임상의학실습은 조 단위로 이루어진다. 짧게는 1년에서 2년까지 이루어지는 조별 활동에 참여하면서 학생들은 그 전까지 서로 공부를 하거나 동아리 활동에 임하면서는 미처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이 정보를 습득하고 공유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전체적인 팀의 활동과 성과에 영향을 준다는 특성은 이전까지의 커리큘럼에서는 미처 경험해보지 못했던 부류의 것으로 앞으로 평생 동안 지속될 협업이라는 '동행'을 엿보는 예고편과도 같다.의예과, 의학과를 거치며 수행했던 지난 조별 활동과 특히 다르다고 느꼈던 지점은 바로 인수인계였다. 각 조는 해당 과의 실습을 마치고 나면 다음 조에게 연락 방법, 일정, 장소, 환자 파악 방법, 발표 준비와 관련해 실습을 돌면서 알게 된 정보를 인계하고, 다가오는 실습에 앞서 이전 조에게 인수인계를 받는다. 누적되는 인계 사항을 숙지함으로써 앞서 돌았던 조의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한편, 전에 돌았던 사람들의 팁을 얻음으로써 효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해진다.인수인계의 본질은 각 조뿐 아니라 학년 전체를 하나의 동료의식으로 묶어주는 데에 있다. 비록 자신은 목표치에 미달했을지라도 그 다음에 올 누군가가 이전보다 나은 태도를 유지하고 이전보다 좋은 성과를 내도록 성심성의껏 도와줌으로써 조직 전체의 성장을 도모하는 까닭이다. 실습을 거쳐 수련의가 되었을 때에도, 이후 전문의가 되어 자문을 제공하고 협진을 할 때에도 계속될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은 뒤에 오는 사람을 끌어당겨 주는 사슬이 반복되어 하나의 원이 보다 팽팽하고 조밀하게 짜여지는 동행(同行)과 닮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조별 실습을 감히 '학생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부르고 싶다.누군가와 함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조별 활동을 지속하다 보면 동일한 과업을 수행하는 조 내에서뿐 아니라 인수인계를 해 주는 다른 조 사이에서도 불가피하게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갈등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친구의 모습뿐 아니라 자신의 민낯을 발견하게 된다. 상황의 밖에서는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처럼 여겼던 스스로가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참 많이 실망하곤 했다. 학기의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깨달았던 것은 잘잘못이 분명한 일일지라도 결국 우리는 계속 동행을 이어나갈 서로에게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기는 아주 어려운 일인 반면 그렇지 못한 타인에 대한 비난은 아주 손쉬운 일이다. 스스로에게 엄격해지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하고, 그 중심이 오랜 시간 동안 지켜졌을 때 비로소 타인에게도 믿음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시간과 노력을 수고스럽게 투입하는 일보다는 당장 그러지 않는 타인을 비난함으로써 나는 그러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는 일이 보다 빠르게 안도감을 얻게 해준다. 덤으로 실제로 내가 그러한 사람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믿음을 주는 사람의 이미지를 아주 손쉽게 형성해 주기도 한다.의료윤리학에서는 의사가 동료의료인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동료의사의 잘못을 인지하였을 때의 행동원칙, 그리고 동료와의 관계에서 바람직한 태도를 명시하고 있다. 동료의사가 직무 수행에 있어 문제를 일으킨다면 우선 본인과 대화를 시도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동료는 이를 열린 자세(open mind)로 경청해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때 평가 권한을 가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상급자는 원인을 파악하고 교정과 교육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합리적 처리 능력을 가진 조직이 건전하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피드백의 건전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피드백이 평가 권한을 가진 상급자가 아닌 본인에게 먼저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은 타인을 단죄하기보다는 그에게 기회를 부여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는 인간관계의 상호 스트레스를 줄이고 긴장감을 해소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 일의 효율을 높이고 환자와의 동행에 있어 더 신뢰할 수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함이다.
2023-10-23 05:00:00오피니언

의료현장에서 배운 따뜻한 온기

메디칼타임즈=오예지 학생(차의학전문대학원) 겨울코트를 입고 추위에 떨며 출근했던 것이 얼마전 같은데 어느덧 초록빛이 무성한 여름이 되었다.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5개의 과를 돌았고 지식과 함께 의료인이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를 거쳐 내과 첫 실습을 류마티스 내과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소아와 비교적 젊은 여성 환자를 보다가 내과에서 거동이 불편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인 환자를 처음 만났다. 노인 환자 진료시에는 청력이 좋지 않은 분들을 위해 큰 소리를 내야하고 같은 이야기도 여러번 해야하는 고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류마티스 내과는 다양한 과에서 협진 의뢰로 진료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그만큼 다양한 기저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방문했다. 환자의 수가 정말 많은 상황속에서도 모든 환자분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안내책자로 질환과 앞으로 치료계획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는 모습을 통해서 최근 국시에서 강조하는 PPI(환자-의사 관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다.노인 환자 진료는 난이도가 매우 높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많았다. 일례로,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계신 할머니 환자가 따뜻한 물을 사용하라는 교수님 말씀에 버럭 화를 내시며 돈이 얼만데 따뜻한 물을 사용하느냐고 하셨다. 뒤에서 듣고 있던 나는 환자의 저런 반응에 어떻게 답해야 하나 당황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은 웃으며 "따뜻한 물을 사용해야 뻣뻣한 것이 더 잘 풀리니깐 아침에라도 꼭 따뜻한 물로 손 푸세요"라고 말씀하시며 진료를 이어나가셨다. 노인 환자가 화를 내더라도 더 잘 이해시켜 드리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의료인이 갖춰야 할 자세는 비단 교수님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친절함이 무엇인지 심전도실 간호사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바쁜 와중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고 나이가 지긋한 환자의 말씀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친절하게 답했다. 지팡이를 잃어버린 어르신의 지팡이를 찾아 주기도 하는 등 모든 행동과 말투에 온기가 묻어나왔다. 많은 환자와 업무량, 같은 업무를 매일 반복하다 보면 타성에 젖을 법도 한데 볼때마다 한결같이 환자를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에 지켜보는 사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삭막하고 예민할 수 있는 병원 분위기를 작은 친절함으로 따뜻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며 진심을 담은 친절함은 환자를 넘어 주변 사람들까지도 물들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의사가 외래에서 환자를 어떤 사명감으로 봐야 하는지 심장내과 실습을 돌며 배우게 됐다. 교수님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환자를 대하는 친절함과 의료 전반에 관한 자세한 설명에 내 가족이 심부전으로 아프게 된다면 교수님께 진료를 받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기 전공분야가 아닌 질문, 혹은 무리한 약 처방 요구를 단칼에 거절할 수도 있을 텐데 인자하게 웃으며 자세히 하나하나 설명했다. 환자가 나간 뒤에 교수님이 "나는 환자를 오래 보는 편인데 외래에서 환자를 빨리 빨리 보고 싶어하는 의사들도 많아. 오래 이야기하고 환자를 보면 나도 힘들지만, 외래에서 환자를 자세히 보고 진료해야 이분들이 응급실을 통해서 오는 일이 없지 않겠어?"라고 하신 말씀이 큰 울림을 주었다.외래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러나 교수님의 말을 듣고 올바른 의사란 내게 온 환자가 내가 놓치는 부분으로 인해 응급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다.의사는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해야 하기에 지식과 더불어 환자를 대하는 자세도 배양해야 한다. 실습은 의료적 술기와 지식을 배움과 동시에 의료인 선배의 자세와 가치관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실습 기간 중 성실히 보고 배우며 지성과 더불어 친절함의 온기가 배어 나는 의료인으로 성장하도록 하자.
2023-06-19 05:00:00오피니언

"안녕하세요? 학생의사 OOO입니다"

메디칼타임즈=조윤아 학생(경북의대) "안녕하세요? 학생의사 OOO입니다."의사 국가고시 합격을 위해 모의환자 앞에서 수도 없이 내뱉는 말이다. 환자가 어떤 이유로 병원에 오게 되었는지, 그 증상의 양상은 어떠하고 동반증상은 없는지, 환자가 과거에 앓거나 현재에 앓고 있는 질병은 없는지 자세히 파악해야 한다. 환자의 대답을 바탕으로 환자의 병명을 추측하고 이에 맞는 추가 진단과 치료 방법, 생활 개선 방법을 환자에게 추천한다. 문진의 기본이며 그렇기에 다양한 상황에 맞추어 연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모의 환자 역시 적절히 증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주기적으로 교육을 받는다.그러나 병원에서 만나는 실제 환자는 사뭇 다르다. 모의 환자와는 다르게 그들은 내가 스스로를 '학생'이라 칭하지 않는 이상 나를 의사라고 생각한다. 하얀 가운에 가려져 'PK실습생'이라고 적힌 명찰은 간과되기 십상이다. 환자들은 내게 종종 길을 묻기도 하고, 간단한 의학지식들을 질문하기도 한다. 알고 있는 것이 있을 때도 있지만, 섣불리 대답하기는 망설여진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담당의사 선생님께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정도이고, 이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자연스럽게 숙인다.이런 와중에 "안녕하세요? 학생의사 OOO입니다"를 시도해야 할 순간이 가끔씩 나타난다. 외래에 초진으로 방문한 환자의 예진을 해야 하거나, 회진을 참관하다가 환자에게 궁금한 점이 생기는 경우가 그러하다. 특히 증례발표 준비를 위해 환자의 전반적인 문진이 필요할 때는 비상이다. 주치의도 아닌 사람이 와서 환자에게 질문을 하니 환자의 마음속에 불신을 심어주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하다. 마음씨 좋은 어떤 교수님이 "제 학생인데 이 학생이 오늘이나 내일쯤 찾아갈테니 잘 대답해주세요"라고 말씀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뜬금없이 잘 치료받고 있는 환자에게 찾아가 "안녕하세요 학생의사 OOO입니다", "병원에는 어떤 문제로 오셨어요?"라고 묻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이미 주치의 선생님들과 교수님이 다녀간 상황이라면 환자는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게 만든다고 짜증낼 수도 있다. 한 번은 당신은 돈이 없으시다며 잡상인 취급을 받아본 적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 한다. 환자의 마음이 이해는 가면서도, 깊이 있는 배움에 필수적이라 놓칠 수 없는 과정이다.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는 문진을 비롯한 진료과정과 수술을 비롯한 치료과정이 도제식에 가깝게 교육된다. 임상의학의 이론만 배워서는 적절히 의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으며 환자와의 관계 형성이 최근 더욱 중요시되고 있는 가운데 병원에서의 실습을 필수적이다. 이것이 병원이라는 공간에 환자와 의료인 외의 '학생'이 존재하게 된 이유다.다만 대부분의 환자는 PK실습생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듯하다. 유행했던 드라마인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잠깐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 확인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소위 빅5 병원이나 내가 있는 경북대병원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상급 병원은 수련병원이다. PK실습생들이 환자진료와 치료과정을 참관하며 배우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고, 의료서비스 발전에 필수적이다. PK교육에 관심있는 교수님들이 때로 적극적인 자세로 환자를 자세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지만 학생에 대한 낮은 인지도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할 때가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그러니 환자들이 병원에 교수님이 있고, 레지던트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PK실습생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지해주시길 희망한다. 외래에서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 외에도 열심히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면 좋겠다. 혹시 언젠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안녕하세요? 저는 학생의사 OOO입니다"고 말하는 학생을 만난다면, PK학생들인가 보다 하고 학생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대답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PK학생들은 환자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 어느 날 병원에 다녀오신 할아버지께서 치료를 받는 도중 학생들이 쳐다보니 당신이 마치 마루타가 된 것 같았다는 말씀을 듣고 화들짝 놀란 경험이 있었다. 환자분는 수치심이나 불편감을 느끼실 필요가 없다고, 미래의 자신을, 미래의 지인을, 미래의 가족들을 위해 투자하고 계신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이해해 주셨다. 환자의 의식이 조금씩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오늘도 조심스레 책임감을 높이는 주문을 되뇌어본다. "안녕하세요? 저는 학생의사 OOO입니다."
2023-06-12 05:00:00오피니언

의대생의 병원 나기

메디칼타임즈=정성현 학생(고대의대) 올해도 어김없이 정신없는 대학병원의 3월은 지나가고 4월이 찾아 들었다. 국가고시를 앞둔 본과 4학년 학생들에게는 병원 실습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의과대학생들은 학생의사, 폴리클 선생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병원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왜 병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것을 느끼는 걸까?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의과대학 자체평가 기준에 의대생의 임상실습 교육과정을 최소 52주, 주당 36시간 이상을 운영하고 강의평가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의대생은 아직 의료인이 아니지만 법적으로 학습권을 보장받게 되어 임상실습에 임하게 된다. 학생들은 이 기간 동안 외래 진료, 수술, 병동 회진, 학회 및 세미나 등을 참관하고 예진, 의무기록 작성, 증례발표를 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 실습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환자 진료에 필요한 적절한 기본수기를 습득하고, 실제 환자와 상호작용하며 환자의 대화방법을 터득한다. 나아가 병원의 구조와 의료 체계에 대해 이해하고, 의료인으로서 전문직업성을 함양하게 된다.실습의 구체적인 지침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교수의 관점에 의해 교육의 방향이 좌우되기도 한다. 막연하게 해당 과의 분위기를 보며 지망할지 고민해보라는 교수도 있는 반면, 일차 의료 제공자로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질환의 임상상을 체험하거나 특정 질환에 대해 전문의 수준의 치료 계획 수립에 학습목표를 두는 교수도 있다.또 병원 실습은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수업이 아니라 실제 임상 상황에서 진행되는 교육이기에 예상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교육이 다양한 목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각 학습자 입장에서는 모두 다른 경험을 얻는다. 나 또한 한 명의 의대생으로서 3개 병원에서 20여 과를 거치는 동안 겪은 온갖 양태의 실습에 때로는 가슴 벅차고 때로는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1년 여 병원을 나며 느낀 점 몇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먼저 실습의 중요한 목적은 평생 몸 담아야 할 병원이라는 곳에 익숙해지고 인사이트를 기르는 것이다. 강의실을 갓 벗어난 학생은 병원이 생경하기만 하다. 구조적인, 그리고 실리적인 이유로 진단 알고리즘에 따라 검사들이 시행되지 못하고, 건강보험 문제나 경제적 어려움 등 의료 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교과서적인 치료가 행해지지 못하며, 약물 처방은 성분명이 아닌 낯선 상품명으로 내려진다.이렇듯 병원은 교과서가 지배하는 강의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공간이므로 실습을 하며 그 동안 학습했던 이론과 실제 임상의 괴리를 느끼고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병원 생활을 하며 또 유념할 것은 감정 앞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중증 환자를 숱하게 마주하게 되고 때로는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중환자실에서 장기 투병 끝에 사망하는 환자를 보며 숙연함을 느끼고 응급실에서 가망 없는 심폐소생술이 30분째 행해지는 모습에 황망함을 느끼기도 한다. 정서가 비교적 메마르지 않은 학생에게는 병원에 흐르는 감정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렇지만 의사가 되는 순간 밀려오는 환자에 치이고, 어른들의 사정에 짓눌려 환자와의 소통이 단절되고 그 고충에 무뎌질 공산이 크다.원활한 진료를 위해 의사가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을 몸소 느끼고 승화하는 것은 훗날 환자 공감의 자양분이 되기에 의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의료는 의학과 달리 단순히 의술을 행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환자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이면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병원 실습이 수업 대신 교육이라 불리는 데에는 이론 너머의 것을 터득하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병원 생활을 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예비 의료인으로서 가운이 지니는 무게를 체감하는 것이 필요하다.의대생에게 병원 실습이란 의료인과 비의료인의 경계를 허무는 행위와도 같다. 실습의 취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그를 토대로 충실히 실습에 임하다 보면 의대생에서 의사로 알찬 변태를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2023-05-01 05:00:00오피니언

여유로움과 불안함 그 사이 어딘가

메디칼타임즈=이진규 학생(경북의대) 의과대학 교육과정은 예과 2년과 본과 4년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가운데 본과 1학년, 2학년 과정은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을 나누어 집중적으로 배우게 되는 과정이고 본과 3학년, 4학년 과정은 학교가 소속된 3차 대학병원에서 임상 실습을 통해 실제 의료 현장에서 행해지는 practice를 보고 경험하며 우리나라 의료의 실제적인 현장을 공부하게 된다.비교적 집약적으로(intensive) 진행되는 본과 1, 2학년 과정에 비해 본과 3, 4학년 과정에서는 개인별로 학습에 자율성이 주어지는 과정이기에 학생에 따라서 여유로운 시간 일 수도, 그 어느 과정보다 분주한 과정일 수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필자의 경험에 기반해 느꼈던,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여유와 실습 및 국가고시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 사이에서 의대생들이 경험하는 여러가지 사례들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Case 1) 훌륭한 임상 교수가 목표인 모범생 A군 본과 1, 2학년을 마치고 대학병원에서 임상 실습을 진행하게 되는 첫 해인 본과 3학년에 강의와 텍스트, 시험으로만 접하던 의학지식이 눈앞에서 살아 숨쉬는 경험을 하게 되며 의학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동반자이자 선생님이 되는 환자를 접하게 된다. 이는 대부분의 조무래기 학생의사에게 실로 큰 인상을 남기게 되는 큰 경험이다. 이 때 원하기만 한다면 하루종일 병원에서 교수님 및 환자들과 소통하며 공부 할 수도, 혹은 주어진 만큼의 과제만 수행하고 남은 시간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각 분야에서 뛰어난 임상의로 인정받아 3차 병원인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계시는 임상 교수님들을 바라보며 동경의 마음을 품고, 삶의 목표로 정한 모범생 부류들이 있다.이 친구들은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것에서 넘어 내과계의 클래식이자 현재 표준 치료 가이드라인의 많은 부분을 수록하고 있는 해리슨 내과학부터 레지던트가 참고할 만한 각 분과별 전공서적을 겨드랑이에 끼고 실습을 공부하고 준비한다. 물론 그중에는 좋은 실습점수로 인기과 전공의 자리를 얻고자 노력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와 치료를 제공하는 의사를 꿈꾸는 것은 동일하기에 그들의 노력 역시 칭찬받아 마땅하다.Case 2) 삶과 일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한 효율추구형 B양대학병원에서 임상 실습에 참여하는 의대생을 속칭 PK라고 일컫는다.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 참관이 가능한 과와 달리 보여지는 부분이 적은 과의 실습에 배정된 경우에는 주어지는 일정과 과제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제서야 본과 1, 2학년 때 억눌러왔던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의대 졸업 이후의 삶에서 개발할 자질을 개발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는 친구들이 등장한다.이들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주식, 부동산, 대출 등 자산 관리 부터 ▲보컬, 미술, 운동 등 예체능 개발 유형 ▲활발한 미팅, 소개팅 등 연애 상대 탐색 유형 ▲병원 실습을 핑계로 얻은 차를 이용한 국내 여행 유형 및 ▲단순 집콕 휴식 유형까지. 중간 중간 임상의학종합평가, 의사국가고시라는 불안요소들에 마음이 쓰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불안 요소들을 미래의 나에게 맡기며 자신만의 삶과 일이 균형잡힌 대학생활을 만들곤 한다.Case 3)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으로 비임상 진로일지라도 도전하는 C군도제식 교육이 주가 되는 의과대학 및 병원에서의 수련 시스템은 보편화된 선배의사의 삶을 따라 살기 쉬운 환경이다. 이런 관점에서 case 3은 큰 분류로는 case 2의 효율 추구형에 속할 수 있지만, 기존 의과대학과 병원이 만든 질서를 거부하고 다른 길에 관심을 가진 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의사가 개척할 수 있는 비임상 진로의 경로는 다양하다. 기초 연구, 창업, 봉사, 법률 자문, 기자, 제약회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진로에 관심있는 의대생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함께 뜻을 모아보고자 설립한 메디컬 매버릭스라는 전국 의대생 연합 단체를 통해 의사가 되기 전인 의대생의 입장에서 여러가지 비임상 진로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가고 있다.일례로, 필자가 케이닥 회사와 연합해 진행 중인 의사-의대생 연합 지역 의료봉사를 통한 의료 소외지역 환자의 기본적인 건강검진 사업을 올해만 두차례 진행했다. 여기에는 케이닥 뿐아니라 투비 닥터, 의대생 신문, 델토이드 등 여러 의대생 단체 및 스타트업 및 대학병원 교수님들까지 함께 행사에 참여해왔다.그 외에도 병원에서 발굴한 환자의 니즈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미발굴된 사회적 이득을 창출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창업을 진행한 사례들도 있다. 이처럼, 가슴 뛰는 비임상 진로를 향한 의대생의 진출과 그 과정에서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Case 4) 인생 한방! 국시에 올인하는 D양본과 4학년 실습의 모든 과정을 마친 이후 모든 의대생들의 의사가 되기 직전 마지막 관문이 의사 국가고시 필기시험을 위해 약 1년도 더 남은 시점인 본과 3학년부터 준비하는 친구들이 있다. 마치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처럼 이들은 실습 스케쥴에 맞추어 국가고시 기출문제집을 미리 섭렵하고 실습에 임하는 가하면, 더러는 매일 문제 개수 혹은 시간을 정해 놓고 자신만의 스케쥴에 맞추어 국시 공부를 차근차근 해나가기도 한다.아무래도 시험을 위한 공부이기에 좋은 성적으로 인턴 모집 경쟁이 치열한 병원에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일 가능성이 높지만 아무렴 어떤가. 의사 국가고시 역사 1차 진료의인 일반의에게 의사로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소양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노력 역시 이들이 훌륭한 의사로 성장하는 데 좋은 재목이 되어 줄 것임이 틀림없다.  이처럼 2년이라는 상대적으로 주어지는 여유로운 시간들을 각자 다양한 모양으로 살아간다. 그 어떤 모습이든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시간들이겠지만 그럼에도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두가지가 있다.첫째는, 본 업에 충실하지 못한 의료인에게 허락되는 여유는 없다는 것. 다시 말하면 병원에서 진행되는 임상실습에 충실히 임한 다음에야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의사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 세부전공을 깊이있게 고민하고 경험해볼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시간임을 인지하고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탐색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의과대학을 마무리해가고 있는 필자 역시 부끄럽게도 완료하지 못한 고민이지만, 모든 교수님들이 입모아 이야기하는 중요한 시간인 만큼 후배 선생님들께 의미 있는 이야기로 전달되기를 소망해본다.
2022-12-05 05:30:00오피니언

국시만 남았다, 끝과 시작의 경계에서

메디칼타임즈=모채영 학생(가천의대) 본과 4학년 2학기. 본과 1학년 1학기의 나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때가 오고야 말았다.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나의 눈 앞에 지난 6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인생의 큰 단계 하나를 마무리하는 사람이 으레 그러하듯, 이 곳에서의 경험이 나라는 인간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조금씩 되짚어본다.나의 예과 생활은 공부밖에 모르던 수험생에서 대학생으로의 변천 과정이었다. '인생 처음' 혹은 '성인 되고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어디든 따라붙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술들을 하나 둘씩 마셔보고 이국적인 음식들을 맛보고 다녔다. 인생 처음으로 숙취를 경험했다. 가본 적 없는 곳들을 가고 해본 적 없는 것들을 했다. 모든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가장 설레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본과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내 뜻대로 일들은 따라주지 않았고 세간에서 악마화 되어 뜬소문으로 떠도는 의대생의 시험기간은 생각보다 버틸 만했다. 그러나 버팀목이 하나는 필요했다. 집과 학교라는 짧은 이동 경로에 갇혀 있는 나에게 여행 계획을 잡아두고 손꼽아 기다리는 낙 정도는 있어야만 했다. 학생의 작은 소망을 무참히 꺾은 것이 본과 2학년 초 닥친 역병이었다. 5월이면 끝난다던 비대면 수업이 2년을 갔다. 누구에게는 축복이었고 누구에게는 악몽이었다.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축복이었고, 이곳저곳 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의 발길에는 악몽이었다. 그러한 양가 감정을 버텨가며 동맹휴학 사태를 지냈고, 어느새 나의 이름 앞에 ''학생 의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1년 반 동안의 실습 기간은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본과 1학년의 한 학기보다도 짧게 느껴진다. 책상 앞에 앉아서 아이패드만 들여다보는 것보다, 병원에 가서 걸어 다니며 '무언가'를 한다는 게 시간의 화살을 빨리 움직이게 했다. 전자 의무 기록(EMR) 읽는 법이 익숙해지고 EMR 프로그램 다루는 게 새롭지 않을 무렵이 되니 본과 3학년이 끝났고, 이미 병원 생활이 익숙해진 사람에게 한 학기의 실습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어느덧 여섯 번째 해. 의대생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던, 지식의 부족으로 감히 '의학'이라는 학문을 논할 수조차 없었던 예과생 티를 완전히 떨쳐낸 본과 4학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많이 달랐다. 멀게만 느껴지던 의대 생활 ‘이후’의 삶이 방문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이후로 평생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던 내가 사회의 냉정한 심판대 앞에 서는 때가 온 것이다.누구도 나의 실수를 대신 책임져주지 않고, 그동안은 '모의'라는, '실습' 혹은 '연습'이라는 글자 아래서 맴돌던 내 의학적 지식과 행위들은 유형의 결과를 낳기 시작한다. 이십대 초반을 한참 지나서, 다시금 '인생 처음'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고작 너덧 달 뒤, 나는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서 또 다시 '인생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무수히 따라붙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지난 6년간의 의대 생활은 아둔한 수험생을 한 명의 사회인으로 깎아냈다. 완벽할 자신감이나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희망을 갖기에는 너무 현실을 잘 알아버렸지만, 어쩌면 그러한 깨달음이 앞으로의 삶을 견뎌내기 위한 준비물일지도 모른다.
2022-10-11 06:32:59오피니언

임상실습하는 학생의사의 고민들

메디칼타임즈=오수빈 학생(가톨릭 관동의대) 본과 1, 2학년 시절 본과 3학년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청진기와 펜라이트를 가지고, 의사 가운을 입으며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동경하고는 했었다.그랬던 내가 이제는 임상실습(PK)에 참여하는 어엿한 학생의사가 되었다. 임상실습 진입식에 참여해 꽃다발을 받으면서 설레면서도 묘한 감정을 느꼈던 나는 이제 6개월이 넘는 시간을 실습생으로서 보냈다.임상실습을 돌면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막중함'과 '막막함'이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감정이었다.강의실에서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의학 지식을 습득하고 문제를 푸는 것과 실제 환자를 보고, 지식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달랐다. 문제 속의 사례(Case)와는 달리 병원에는 실제 '사람'들을 마주하고, 소통해야 한다. 나의 판단이 누군가에게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실습을 돌면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그래서 그런지 초반에는 압박감에 짓눌린 채 병원에 출퇴근하는 나날이 많았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부족하게만 느껴지고, 졸업하고 나서도 이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밤을 지새우곤 했다.불안했던 시간들도 경험이 쌓여가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실습생으로서 내 자신에 적응하고 있다.격언을 보면 시간이 지나면 결국 괜찮아진다라는 의미를 내포한 경우가 많다. 그러한 말씀들 모두가 결국 왕도는 끝없는 노력과 경험을 통한 체화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 아닐까?특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의학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니만큼 비의료인보다 높은 수준의 지식과 책임을 필요로 한다. 내가 느끼는 막막함과 부담감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의술을 펼치기 위한 의사가 되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생각이 든다.실습을 돌다보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단순히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장애물이 아닌, 나의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바라보고 싶다. 
2022-09-19 05:00:00오피니언

코로나 이후 급물살타는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기대

메디칼타임즈=최형화 학생(원광의대) 2019년 COVID-19이 전세계를 강타한 이후 우리의 삶은 많은 것이 달라졌으며, 변화가 가속되었다. 의료계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그 동안 논의만 되고 여러가지의 이유로 시행되지 못했던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된 것이다. 비대면 의료체계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도 원격의료 서비스의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비대면 의료 서비스와 함께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것은 디지털 치료제다. 디지털 치료제란 질병이나 장애를 치료, 관리, 예방하기 위해 환자에게 치료적인 중재를 제공하는 고도화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알약과 같은 저분자 화합물인 1세대 치료제와 세포치료제 등의 생물학적 제제와 같은 2세대 치료제를 잇는 3세대 치료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디지털 치료제는 2017년 9월 미국 FDA가 페어 테라퓨틱스의 약물중독 치료제인 'reSET'을 최초로 허가하면서 본격 등장했고, 11월에는 프랑스 볼룬티스가 제2형 당뇨병 인슐린 투여 용량 계산 앱인 'insulia'가 미국과 유럽에서 동시 승인 받았다.국내에서는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를 받은 제품은 없지만 다양한 제품들이 현재 개발 또는 임상 시험 단계에 있다. 현재 라이프시맨틱스의 호흡재활치료 기기인 '레드필숨튼'과 뇌졸중으로 인한 시야장애 치료제로 뉴냅스가 개발한 '뉴냅비전' 등이 허가임상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디지털 치료제는 비침습적이기 때문에 약물의 위험이나 부작용이 기존의 치료제에 비해 적다는 장점이 있고, 일반 의약품과 달리 제조, 운반, 보관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아 저렴한 비용으로 대량 공급이 가능해 의료비용을 낮출 수 있다.또한 소수의 의사가 다수의 환자를 관리할 수 있어서 의료공급의 부족이나 재정적인 문제 또한 일부 보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며, 환자 데이터의 수집 및 저장이 용이해 환자 상태를 시간과 공간의 한계 없이 모니터링 가능하다. 수집된 데이터는 향후 환자 맞춤형 의료를 제공하고,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는 등 데이터를 활용하기 유용하다는 장점이 있다.하지만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 미국에서는 20종이 넘는 디지털 치료제가 FDA 승인을 받았지만 임상 현장에서 실제로 환자에게 처방되는 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하는 의사들이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며, 위험성이나 책임 부담을 우려해 선뜻 나서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의사가 처방한다고 한들 환자에게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사용해야하는데, 기존 의약품보다 효과가 느리고 사용도 복잡하기 때문에 환자가 쉽게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과 명확한 규제 체계가 아직 없고, 치료제 측면에서 안정성 관리 기준이 부재한 상태라는 것이 해결해야할 문제다. 현재 세계적으로 디지털치료제는 주로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 환자나 중독, 불면,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정신질환자, ADHD, 치매, 자폐와 같은 신경 질환자를 대상으로 개발되고 있다. 현재는 치료 분야가 제한적이나 많은 관심을 받으며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보아 치료 분야와 역할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예를 들어 Kaia health는 근골격계 통증에 대해 동작 추적 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운동과 이완요법, 정보를 제공한다. AI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바이오마커 솔루션으로 동작을 추적하여 개인의 움직임의 범위와 균형, 안정성 등을 스마트폰을 이용해 측정해서 환자에 대한 설문 결과와 함께 진단 및 치료에 사용한다.현재 학생의사로서 재활의학과 실습을 돌면서 환자들이 매일같이 물리치료, 작업치료실 등 치료실에 나와서 재활치료를 받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라 병동에서 치료실까지 이동하는 것이 불편해보였고, 퇴원하고 나서는 병원으로 오는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재활 치료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환자가 퇴원한 이후에도 꾸준히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디지털 치료제의 형태로 제공할 수 있다면 환자의 예후와 삶의 질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의사가 되어 환자를 만나게 될 때에는 또 어떻게 많은 것들이 바뀔지 기대가 된다. 빠른 시대의 변화와 그 흐름 속에서 빠르게 적응하고 도전하면서 환자가 만족할 수 있는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2022-06-20 05:00:00오피니언

진화하고 있는 미래의료 속 의학과 공학의 연결고리

메디칼타임즈=이진규 에티오피아에서 해외봉사활동 중 팔뚝에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상처를 가진 채 봉사센터를 찾아온 현지인을 만났다. 농사 기구를 다루다가 발생한 간단한 외상으로 생긴 상처를 그대로 방치하여 봉와직염으로 발전했고, 팔을 쓸 수 없게 될 지경에 이르러서야 봉사단을 찾았던 것이다. 열혈 넘치는 공대생이었던 필자는 환자들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일찍 알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는 안타까움을 느껴 이에 대한 공학적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싶어 의료기기 개발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감사하게도 수준 높은 연구실에서 바이오 센서를 주제로 사람에게 부착 가능한 반도체 전자기기를 설계하고 제작하여 응용하는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스마트 워치 형태의 휘어질 수 있는 밴드를 제작해 땀을 이용해 혈당, 체온, 혈중 pH, 전해질, 스트레스 호르몬 등 인체 항상성 상태를 나타내는 구성 요소를 측정하는 바이오 센서를 설계하고 제작했다. 또한, 블루투스 기술을 이용하여 이를 스마트폰으로 무선 조작하고 결과를 주치의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더 나아가 항상성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 스마트폰으로 조작가능한 약물전달장치를 배에 부착하고 주치의의 처방에 맞게 마이크로 니들에 담지된 약물이 통증없이 투여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했다. 하지만 고도화로 집적화되고 복잡한 센서 기술에 대해 연구할 수록, 계속해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과연 이 기술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걸까?'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공동 연구하던 의대 교수님께 강의자료를 요청해 관련 내용을 혼자 공부도 해보고 수시로 질문도 드려보았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익히는 의학지식과 실제 환자를 통해 배우는 임상 지식 간에는 큰 간극이 존재했고, 이러한 임상 정보는 오직 자격을 갖춘 의료인만 접근할 수 있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이를 계기로 의과대학에 편입한 이후 학생의사 신분으로 병원 실습 중인 요즘, 병원에서 환자들을 직접 보며 느끼는 살아 숨쉬는 임상 지식들은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대학원에서 진행했던 연구의 임상적 중요성에 대해 스스로 다시 평가해볼 수 있었다. 혈당의 경우, 땀을 이용한 혈당 측정 대신 복막 사이질 액을 이용해 연속적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기기가 수년 전부터 병원내에서 사용 중이었다. 전해질의 경우, 혈중 pH와 전해질을 일상생활에서 측정하는 것이 예방의학적인 관점에서 급성 심근경색의 조기진단 인자로서 임상적 의의는 있지만, 이러한 인자에 변화를 보이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일상생활 측정이 의미가 없는 장기간 입원 중인 고령 환자들이었다.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경우 이를 측정하여 개개인의 면역 정도와 연결시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지만 코르티솔 수치는 하루에도 변화가 워낙 심해서 병원에 입원해서 24시간 동안 측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큰 뜻을 가지고 진행했던 연구가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 과거에 대해 실망스러운 마음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느낀다. 의료현장에 새롭게 적용하여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의공학 기술은 지금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를 세계적으로 선두하고 있는 Northwestern university의 John Rogers 교수 연구진의 최근 연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John Rogers 교수 연구진은 신생아 중환자실의 소아 환자들에게 손바닥 크기만한 패드를 부착하여 활력 징후를 무선으로 측정하고 변화가 나타날 경우 주치의에게 전달되는 기술을 개발하여 2020년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지에 게재했다. 최근에는 피부에 착용 가능하고 땀을 기반으로 낭포성 섬유증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사이언스(science) 자매지에 발표했다. 그 외에도 병원 내의 의료 전달 시스템을 효율화하고 일반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다. '위기'와 '기회'는 함께 온다는 말이 있다. 의료기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괴적인 혁신은 비교적 짧은 미래에 의료 현장은 물론 환자와 건강한 사람 모두의 웰빙 양상을 바꿀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기술의 발전을 실제 현실과 연결하고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환자와 의료 체계에 대한 이해를 갖춘 의료인이라는 부분이다. 의료인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눈 앞에 다가온 '기회' 혹은 '위기'를 적극적으로 함께 붙잡을 수 있기를 도전하고 기대한다.
2021-05-10 05:45:50오피니언

학생의사, 흰 가운의 무게를 견뎌라

메디칼타임즈=이호명 |원광의대 의학과 3학년 이호명| "선생님, 링거 쪽으로 피가 올라와요! 어떻게 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임상실습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던 3월의 어느 날, 한 보호자의 요청은 나를 두 번 당황하게 만들었다. 일단, 내가 생각한 나는 '선생님' 이 아니었다. 아직 병원보다 강의실이, 출근보다 등교가 익숙한 학생이었기에, 몇 번이고 '선생님'을 찾는 목소리에도 그것이 나를 향한 것임을 깨닫는 데 한참이 걸렸다. 뒤늦게 달려갔지만, 이동식 침대 위 환자에게 학생의사가 해줄 수 있는 처치는 아무 것도 없었다. 무엇도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호자의 간절한 눈빛은 나를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젖어 들게 했다. 이내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스테이션에 계신 간호사 선생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한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였기에, 정말 태연하게 들렸을 지는 모를 일. 병원에서 흰 가운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복잡한 병원 구조에 길을 헤매고, 혹여 모르는 게 생길까 하루 종일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어리숙한 학생의사였지만, 적어도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달랐다. 흰 가운에 청진기와 펜라이트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교수님들, 레지던트 선생님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가장 먼저인 의료현장에서 어떠한 자의적인 의료 행위를 '하지 않는', 아니 '하지 못하는' 학생의사가, 현장의 최일선에 있는 의사로 비추어지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이 날을 계기로, 실습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실습을 시작할 즈음, 책으로 배운 '죽은 지식'에 실습이라는 생기를 불어넣어, 탁상공론만 하는 이론가가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수업을 들을 때와 다름없는 등록금을 지불함으로써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하는 학습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부딪혀보니 임상실습 과정은 학습권의 행사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음으로써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감이 더해졌다.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의사 자격을 갖춘 후가 아닌, 흰 가운을 입기 시작하는 '화이트 코트 세레모니' 때 외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그래서 학생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는가'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3월의 이 날에도 5월의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나를 찾는 보호자 앞에서 당황할 것이고, 주사바늘을 다시 꽂아주는 것도, 수액 양을 조절해 주는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변함없이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드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흰 가운을 입은 나를 의사로 알고 있을 환자와 보호자를 생각한다면, 환자 치료 과정의 일원이라는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진다면, '큰 일 아니니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간호사 선생님께서 조치해 주실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환자를 안심시키는 말 한 마디, 따뜻한 눈맞춤 한 번 전할 수 있지 않을까. 냉정하게 환자의 치료에는 아무 영향이 없겠지만, 환자가 치료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조금이나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의사로 오해받으며, 수많은 질문을 받고 있다. 이제야 익숙해진 병원 위치에 대한 물음 외에는, 여전히 내가 모르는 것, 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처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언제쯤 CT를 찍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하고, 지독히도 병이 안 낫는다는 호소에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 하지만, 공감의 눈빛, 따뜻한 말 한마디로 환자가 위로를 받는다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는 마음을 환자에게 기꺼이 내어 보인다면 나름대로 '흰 가운의 무게'를 잘 견디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20-06-22 05:45:50오피니언

진심을 다하는 의사에 대해

메디칼타임즈=염인지 |강원의대 의학과 2학년 염인지| 우리 학교는 의전원에 입학할 때, 신입생들이 각자의 포부를 담아 "나는 00한 의사가 될 것이다"라는 문구를 적는다. 나는 "진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적었다. 의사라는 직업은 막연하게 실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력이 좋아지려면 배움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은 두루뭉술하게 진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적었다. 그리고 의학과 2년 차인 지금은 실력을 갖출 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도 위로해줄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멋모르고 썼던 진심을 다한다는 말은 내게 더욱더 깊은 의미가 돼가고 있다. 2학년에 올라오면 의사입문이라는 과목을 가장 먼저 배운다. 본격적인 임상 이론을 배우기 전에 아주 간단한 임상 술기와 더불어 환자에 대한 예의, 환자와의 공감 교육을 받는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환자의 정서반응 이해", "적극적 경청과 공감 실습" 수업이었다. 표준화 환자를 모셔두고 의사와 환자 역할극을 통해 환자와의 소통을 연습했다. 교실 앞에 한 명의 동기와 표준화 환자분이 마주 앉았다. 학생의사 역할을 맡은 동기가 환자분께 검사 결과 위암이라는 소식을 전하자 표준화 환자는 절망하며 눈물을 보이셨다. 의사 역할을 맡은 동기는 어떻게든 치료를 잘해보자는 의지와 응원을 불어넣으려 했지만 이미 환자는 충격과 슬픔에 휩싸여 의사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교실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슬픔이 감돌았다. 그제야 내가 배우는 것이 사람을 다룬다는 것을, 무미건조한 문장으로 표현됐던 하나의 증례가 한 사람의 중대한 사연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암 재발을 걱정하는 환자, 검사 예약이 잘못돼 화가 난 환자 등 여러 사례에 대해 다루었으며 소규모로 조를 나누어 모두가 역할극에 참여해볼 수 있었다. 사례 역할극이 끝나면 표준화 환자분이 우리의 대응이 어떻게 느껴졌는지 이야기해주셨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동기가 환자와의 공감, 환자에 대한 경청에는 익숙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환자의 입장에서 소통이 잘 안 되는 느낌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물론 많은 환자를 보는 의사로서 모든 환자의 감정에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청하려는 집중력이 극대화됐던 수업에서조차 소통하기 힘들었던 것은 그만큼 환자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공감하려는 노력과 고찰이 평소에 부족했다는 증거였다. 이때 비로소 환자와 소통하며 마음의 위로도 건넬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을 다한다는 것은 감정적 공감뿐만 아니라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환자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다. 얼마 전 배운 중증복합면역결핍증(SCID)을 앓는 환자는 만 3세를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사망한다. 게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감염을 막기 위해 외부와 격리돼 좁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지내게 된다. 의사로서 우리는 환자의 수명 연장을 위해 치료 방법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사는 동안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교수님도 이 부분을 강조하셨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삶을 위해 의사로서 어떤 노력을 할지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한때 나는 의사는 그저 실력이 좋으면 그만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많은 시험을 보며 힘들게 배우는 의학은 결국 사람을 향해있기 때문이다. 국가고시를 통과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가 되는 의전원/의대의 특성상, 학생일 때 그저 시험공부에만 몰두하면 의사가 됐을 때 환자와 소통할 수 없는 의사, 마음이 없는 의사가 되기에 십상이다. 진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은 학생인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
2020-04-20 10:59:30오피니언

사명감 하나로 코로나 전쟁터에 뛰어든 의사들

메디칼타임즈=정호영 |충남의대 의학과 3학년 정호영| 꽃이 피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새 출발이 시작되는 계절의 3월, 우리에게 이런 봄은 멀게만 느껴진다. 거리는 한산하고 약국 앞에는 마스크를 낀 인파가 줄을 잇는다. 초‧중‧고등학교는 유례없는 사상 첫 4월 개학, 대학교는 온라인 개강을 결정했으며 북적여야 할 학교는 굳게 문을 닫은 지 한 달이 다 돼간다. 텅빈 가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자영업자들의 곡소리가 들려온다. 며칠 전 1800선이 붕괴됐다던 코스피지수는 이제 1400도 위태해 보인다. 경제도 코로나 사태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사람들 역시 공포에 떨고 있다. 병에 걸릴까도 두렵지만 이제 가장 무서운 것은 '이 상황이 장기화 될까봐'이다. 우리의 평온했던 일상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COVID-19 사태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꾸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사회혼란을 틈타, 마스크를 왕창 사 비싼 값에 팔거나, 가짜 마스크를 유통해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우리 인간을 병들게 하는 이 코로나바이러스는 이제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까지 병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루는 병동에 가니, 한 환자가 폐렴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쓰기 싫다고 학생의사인 나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환자에게 괜찮을 것이라고 안심을 시켜주었지만 사실 나라고 두려운 마음은 무엇이 다를까. 병동을 나오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전날 대면진료 했던 고열, 기침의 환자는 혹시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이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이 아닐까. 환자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했는데 괜찮은 걸까. 고작 몇 십 분 환자를 본 나도 이렇게 걱정이 되는데, 매일 수십, 수백 명의 확진 환자와 접촉하는 현장의 의료진들은 어떤 마음일까. 사명감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이들의 걱정과 혼란이 가득한 지금 이 순간에도, 의료계는 방역과 환자관리의 최일선 현장이다. 이곳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렇기에 질병관리본부를 필두로 관련 공무원들, 보건 관련 전문가들은 잠도 못 자면서 방역에 앞장서고 있다. 대학병원도 비상체제에 돌입했으며, 의료진들은 밤낮없이 고생하고 있다. 교수님들의 수척해진 얼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뿐이던가. 본업을 잠시 뒤로 하고 대구로 봉사를 떠나는 의료인들, 직무교육만 받고 현장으로 파견된 공중보건의사들도 볼 수 있었다. 많은 연구진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많은 이들의 사명감과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의료계는 간신히 돌아가고 있다. 병원이 사태의 최일선에서 굴러가고 있는 동안, 이곳에 오길꺼리는 환자도 생겼다. 교수님 사이에서는 '환자가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서워 암으로 돌아가시게 생겼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어쩌면 환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잠시 다녀간 곳만 해도 사람들이 발걸음이 뚝뚝 끊기는데 수십, 수백, 수천 명의 확진 환자가 다녀가고, 머무는 병원은 오죽할까. 그렇기에 의사는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건강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병으로부터 건강해야 한다. 의사 본인을 위해서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다.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가 대다수인 병원에서는, 나의 감염이 나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개인위생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번 달 말이면 병원 실습이 재개된다. 재개될 병원 실습을 기다리면서 우리 예비의료인들도 위험지역 방문 자제, 각종 모임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의 출입 자제, 외출 시 마스크 착용과 개인위생을 위한 손 씻기 등의 생활 수칙을 지키며 국가 비상사태에 협조하고 있다. 나 자신, 내 주위 사람들, 그리고 환자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밤낮없이 고생하는 선배 의사 선생님들의 노고가 물거품이 되지 않게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많은 사회의 혼란이 가중된 지금이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막아내고 있다. 소의(小醫)는 질병을 고치는 의사이고, 중의(中醫)는 사람을 고치는 의사이며, 대의(大醫)는 사회를 고치는 의사이다. 라는 말이 있다. 사명감 하나로 오늘도 코로나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지금의 의료진들이야말로 사회를 고치는 '대의'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많은 선배 의사 선생님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힘찬 박수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 사회가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이들이 묵묵히 자기 일을 다해주고 있는 덕분이다. 밤낮없이 사명감 하나로 겨우 버텨내고 있는 이들이 견딜힘마저 바닥나기 전에, 하루빨리 모든 것이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소망해본다.
2020-03-26 05:45:00오피니언

의전원생의 오사카 시립대학병원 실습기③

메디칼타임즈=마새별오사카 시립대학병원 실습기-3 실습 시작 이전에 미리 담당자를 만나 기숙사 키를 받고 우선 무거운 짐들을 두고 와야 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곧바로 오사카시립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오사카시립대학병원은 해외 의과대학 학생들이나 의료진들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담당자분도 영어로 능숙하게 소통할 줄 아셔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궁금한 사항들을 곧바로 해소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5분여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기숙사에 짐을 풀고, 가운과 청진기 등 간단한 짐만 챙겨서 바로 실습을 위해 병원으로 돌아왔다. 담당자분께서는 사물함에 짐을 두고 의과대학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나와 실습을 함께 돌게 될 같은 조 일본 학생들이 올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실습 시간이 다가오자 실습복으로 갈아입은 일본 학생들이 복도에서 보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복장이 한국의 간호대 실습생들과 비슷해서 간호대생들로 착각할 뻔했다. 그런데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비슷한 복장이었고, 무리들 중 두 명의 여학생이 내게 다가오더니 이름을 확인하고는 본인 소개를 하는 것을 듣고서야 의과대학 실습생들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상상했던 일본의 여학생들처럼 귀엽게 생긴 두 명의 여학우는 나와 함께 실습을 돌게 될 조원들이었고, 나와 일본 실습생들 5명을 포함해서 총 6명이 앞으로 2주간 소화기내과 실습을 돌게 될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면서 소화기내과 실습 오리엔테이션을 듣기 위해 병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일본 학생들은 특이하게 실습을 돌 때 에코백 같은 작은 가방들을 모두 하나씩 들고 다녔는데, 그 안에 실습 자료들이나 도장을 받기 위한 실습 책자들을 넣고 다니는 듯 했다. 그리고 보통 가운 안에 검은 바지와 검은 신발을 신는 것이 표준인 우리나라의 병원 실습 복장과는 다르게, 위아래 모두 흰색의 유니폼을 입고 신발은 같은 흰색으로 통일하되 운동화를 신는 등 신발 선택 자체는 좀 더 자유로워 보였다. 전체적으로 복장을 흰색으로 통일하다 보니 간호대 학생으로 착각할 뻔 했는데, 결과적으로 간호대 실습생들은 2주간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해서 그들의 복장이 어떤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오리엔테이션이 있을 컨퍼런스 룸에서 담당 교수님을 기다렸는데, 새로운 과를 도는 첫 날의 분위기와 담당 교수님과의 첫 만남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긴장되는 마음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꽤나 비슷한 듯이 느껴졌다. 교수님께서 들어오시자 학생들과 함께 인사를 했는데, 같은 아시아인이다보니 교수님께서는 내가 한국에서 온 학생인지 첫 눈에 알아차리지 못하셨다. 이내 같은 조 학생들이 오늘 유학생이 처음 왔다고 교수님께먼저 말해주는 듯 했고, 교수님께서는 당황하시면서도 신기해하면서 본인이 영어가 조금 미숙해서 일본어 위주로 설명할테니 양해를 바란다고 미안해하셨다. 15분여에 걸쳐 소화기내과 실습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는데, 아쉽게도 필자는 일본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탓에 가끔씩 들려오는 익숙한 단어에만 귀를 기울이며 눈치껏 알아듣는 수 밖에 없었다. 순간 '아, 한두달만이라도 기본적인 일본어를 공부해왔어야하나...'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어차피 한두달 해서는 알아듣기 힘든 의학용어 위주였기 때문에 같은 조 친구들의 통역을 들으며 시간차를 두고서라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한국의 병원 실습과 또 다르다고 느껴진 부분은 2주간의 실습 스케줄이 꽤나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출근 시간 정도만 정해져 있고, 그 날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실습을 하게될 지는 병원의 상황, 입원 환자의 상황, 또 교수님 및 레지던트 선생님들의 업무 일정에 따라 크게 변동이 있었기 때문에 병원 내에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도 길고 불확실한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곳에서는 우리가 보게 될 시술 장소, 시간 등의 일정들이 2주에 걸쳐 미리 계획이 짜져 있어서 좀 더 계획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각 학생들은 위장관 파트, 간담췌 파트에서 각 한 명의 환자를 배정 받았고 2주간 환자의 진단, 치료 및 경과를 살피면서 프로그레스 노트를 작성하고 마지막 날 본인이 맡은 환자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마키코라는 학생과 주로 함께 다니기로 되었는데, 마키코가 맡은 환자의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영어로 환자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고 친절하게 직접 환자를 뵙는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환자분과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환자분께서는 외국에서 온 처음 본 학생의사임에도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잘 부탁한다며 몇 번이고 내게 인사를 해주셨다. 이 짧은 순간에도 한국에 비해 일본환자분들이 의사에 대한 순응도가 높다는 이야기를 체감할 수 있었고, 이렇게 의료진을 믿고 잘 따라주는 환자분들 덕에 선생님들도 진료를 하는데 더 안정감 있고 편안하게 느끼시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담췌 파트 담당 환자의 레지던트 선생님도 만나보았는데, 매번 익숙한 일본어로만 진료를 보시다가 영어로 설명해 주시려니 많이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았다. 환자 차트를 보고 싶었으나, 차트 마저 진단명부터 약제의 성분명까지 모두 일본어로 쓰여 있어서 아무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고 결국 나의 짝꿍인 마키코가 진단명부터 주요 치료 과정까지 영어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마키코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일본의 의과대학에서는 주 교재를 영어 원서로 보지 않고 일본어로 번역된 교재로 대신 사용하며 또 모든 의학 용어도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번역된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정말 기본적인 용어마저 영어로 설명하려면 모두들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해외 학회에 많이 다녀오신 교수님들께서는 레지던트들의 트레이닝을 위해 총 회진을 돌 때 영어로 환자를 설명하도록 한다고 하였고 당장 내일부터 회진 때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첫 날이라 오리엔테이션과 환자 배정 외에는 별다른 스케줄이 없었고, 내일부터는 아침 일찍 내시경 시술이 예정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조원들과 인사를 하였다. 학생들의 복장부터 실습 과정까지 한국과는 다른 점이 꽤나 있었지만, 환자분들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과 또 매일 프로그레스 노트를 작성하는 등의 기본적인 실습 틀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혹시나 학생들과 전혀 소통이 안 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친절하게 도와주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할 2주간의 소화기 내과 실습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2016-07-28 17:02:21오피니언

의사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무게

메디칼타임즈=마새별매일 아침 병원에 들어서서 가운을 입고 나설 때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병원 내에서 많은 분들이 내게 길을 물어보시기도 하고 이것 저것 질문을 하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병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아는 것이 너무 없다. 환자분들은 거의 대부분 내게도'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신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듣기에는 참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거운 이름이다. 한 때 교사가 될까라는 생각도 했었기에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의학의 길에 들어서서 직접 이 호칭을 듣다 보면 내가 정말 '선생님'이라고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지 싶은 생각이 들어 부끄러울 때도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학생 신분이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실습학생이기는 하지만 학생의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병원에서 머무르다 보니 마치 일년 만에 엄청난 신분 상승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렇지만 보이는 것과는 달리 정작 내 자신 스스로는 작년과 지금의 내가 크게 달라진 것도, 발전한 것도 없는 것 같아 때론 죄책감이 든다. 그래도 환자 분들이 이렇게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실 때면 행동도, 말도 더 조심히 하게 되고 더 친절하게, 더 많은 것을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할 때면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이 내심 실망하신 듯한 표정이 보여서 내 마음도 순간 철렁해진다. '조금이라도 환자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공부를 했더라면'과 같은 생각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오히려 내 자신이 더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한 교수님께서 환자나 보호자 앞에서는 얼굴 표정, 말투, 손짓 하나하나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특히나 예후가 안 좋은 경우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나쁜 예후가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헛된 기대를 품게끔 섣부르게 말해서는 안되고, 환자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좋은 예후가 기대되는 경우에는 더 밝고 힘 있게 환자와 보호자의 의지를 북돋아야 한다. 외래를 보거나 입원 환자 회진을 돌 때면 의료진의 좋은 기운을 얻어 크게 호전되는 환자가 있는 반면, 의료진과의 만남 자체를 불편해 하거나 치료방식을 신뢰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병원에서는 흔히 '라뽀' 형성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를 많이 듣는데, 이것은 rapport, 즉 누군가와의 친밀한 관계를 의미하는 말로 환자의 치료 순응도를 높이고 치료에 대한 반응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료진과의 라뽀 형성이 크게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나 한국인들의 정서 상 매우 중요한 요소로, 진정한 라뽀를 쌓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그만큼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은 적어도 환자 혹은 보호자들이 의료진을 믿고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아픈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고 먼저 믿어주시기에 이에 대해 의료진이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와 대응을 한다면 점차 튼튼한 라뽀가 형성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담당 주치의와 라뽀가 강하게 형성된 환자의 경우, 교수님의 말보다 주치의의 말을 더 믿고 따르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강하게 환자와 의사를 연결하는 고리가 바로 이 '라뽀'가 아닐까 생각된다. 앞으로 진짜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의 무게를 몸소 깨닫고, 스스로 그에 부합할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노력해서 환자분들의 기대에 꼭 응답하고 싶다.
2016-05-21 05:00:39오피니언

실습생이 바라본 환자와 의사, 그 안의 공기

메디칼타임즈=마새별병원 실습을 한 지 어느덧 한 달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이젠 학교보다 병원으로 나서는 길이 더 익숙해졌고, 수업을 듣는 것보다 환자를 만나는 일이 더 일상처럼 느껴진다. 초반에는 이것 저것 눈치 보고, 내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병원에 있는 시간동안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래서 별다른 일이 없는 날에도 퇴근하고 나면 그대로 지쳐서 쓰러져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디에든 자리에만 앉으면 꾸벅꾸벅 졸았고, 심지어 환자가 누워 있는 병동의 침대가 그렇게 편해보일 수가 없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이런 병원 생활에 익숙해진 것일까. 매번 가던 곳이지만 병원 안에서 보이는 것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내과 의국이 어디에 있는지, 교수님들이 어디쯤 회진을 돌고 계신지, 담당 치프 선생님께서 어떤 분이실지 등등 병원의 장소나 스탭들에 대한 것들이 주된 관심사였다. 환자들을 만나 뵙고 문진하고 살피는 것이 학생의사에게 주어진 주로 해야할 일이었지만, 환자분들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기에는 나의 지식도, 내공도 너무 부족한 상태였다. 교수님들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줄곧 환자를 자주 만나서 자세히 문진도 하고 대화를 나눠 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매번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걱정과 우려 때문에 선뜻 환자를 보러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입원한 환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면 늘 내 마음도, 발걸음도 무거웠다. "똑똑". 가끔은 이렇게 노크를 하고 환자가 있는 병실에 들어설 때, 환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이길 바라기도 했다.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마침 환자가 그 시간에 없으면 환자를 보지 못한 정당한 이유가 저절로 생긴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스스로 환자 앞에서 작아진 나를 부족하고 초라하다고 여기던 생각이 변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회진을 돌거나 교수님의 외래를 참관하면서 그동안은 알지 못했던 어떠한 '공기'를 느끼게 된 이후부터였다. 그것은 내가 환자도, 직접 대면하는 의사도 아닌 그 두 대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적 위치에 있었기에 쉽게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가 느낀 '공기'라 함은 의사와 환자가 만나 함께 형성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기분 좋은 그 어떤 것은 아니었다. 환자들은 보통 두 가지 감정을 갖고 의사를 만나게 된다.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의사가 덜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첫번째 감정이고, 아무래도 이것이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주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환자는 동시에 불안함과 불편감을 안고 온다. 혹시나 큰 병이 아닐까, 치료 받지 못하는 질환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을 느끼지만 이에 대해 편히 터놓고 의사에게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불편감을 가진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의사는 내 병을 치료해 줄 고마운 사람이지만 동시에 그런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거나 말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어려운' 존재라고 환자가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환자로서 병원에 갈 때도 이런 감정을 느껴 보았고, 또 내가 하는 말을 딱딱 끊어가며 차갑게 대응하는 의사들을 만났던 경험이 이런 불편감을 더 공고히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학생의사라는 관찰자적 입장에서 환자의 기대감과 불편감이 만드는 의사와의 오묘한 거리감을 꽤나 여러 번 확인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환자가 의사를 만나 첫 인사를 하는 시점부터, 아니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설명할 수 없는 그 '공기'가 생겨난다. 환자는 외딴 섬처럼 의사 앞에 놓인 동그란 회전 의자에 앉고, 무엇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이 공기는 진료를 보는 내내 지속될 수도 있지만 꽤나 빨리 깨져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몫은 의사에게 있다. "환자분,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같은 인사지만 의사의 표정과 말투, 손짓과 행동에 따라 대응하는 환자의 표정과 말투가 달라진다. '아, 이 사람에게는 내 힘든 점과 어려운 점을 터놓고 이야기해도 되겠다.'라는 판단이 들면 처음에 생겨 났던 그 불편한 공기는 금새 사라져 버린다. 가끔 차가운 선생님들 앞에서 어렵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환자 분들은 나를 흘끗 흘끗 쳐다보시곤 했는데, 특히나 눈을 마주치시지 않는 선생님들을 대할 때면 더더욱 그랬다. 환자분들은 뒤에 있는 나와라도 눈을 맞춰 가며 이야기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았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 편하게 말씀하셨으면 하는 생각에 가끔씩 눈으로 웃으며 공감해 드리려 노력했다. 외래와 회진에 참여하면서 질환에 대한 접근법이나 치료보다 더 많이 보고 배운 것이 바로 환자를 대하는 법이었다. 스스로 힘들어하는 환자를 어떻게 돕고, 의사를 힘들게 만드는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며, 언제 맺고 끊어야 하는지와 같은 관계에 대한 자세를 많이 배웠다. 그리고 환자분들은 권위 있는 교수님들의 진료도 필요하지만, 나처럼 편하게 말동무를 해드릴 수 있는 학생의사의 방문도 생각 이상으로 반갑게 맞아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환자를 만나러 갈 때 질환에 대한 지식만큼 내가 중요시 여기고 준비해가야할 것은, 환자와 내가 더 가깝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 불편한 공기를 없애는 애정 어린 관심과 말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6-05-04 11:53:32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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